** 기쁨을 회복할 그날(요한복음 16장 16~22절)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한절 묵상_요한복음 16장 21절)
주님을 믿는 자는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해산하는 여자를 비유로 들어 우리의 근심과 기쁨을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는 창세기에서 ‘여자가 해산한 아이가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에 기원합니다(창 3:15). 여자가 해산할 아이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해산과 출산의 비유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시 2:7, 사 7:14 등). 우리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성도에게 근심은 잠깐이고 기쁨은 영원합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16~17, 19절). ‘보지 못하겠고… 보리라’에서 ‘보다’라는 동사는 서로 다른 헬라어를 사용해 미묘한 차이를 줍니다. 전자의 ‘보다'(헬라어로 ‘테오레이테’)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후자의 ‘보다'(헬라어로 ‘옵세스테’)는 내적 깨달음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보혜사 성령이 오심으로 예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태어난 아기로 인해 해산의 고통을 잊고 기뻐하는 것처럼(21절), 예수님을 다시 볼 때에 제자들은 기쁨을 회복할 것입니다(22절). 성도의 기쁨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 완전해집니다.
– 제자들의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근심 뒤에는 기쁨이 오기에 내가 기꺼이 인내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 구하고 응답받는 기쁨(요한복음 16장 23~24절)
23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날’에는 예수님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23절). ‘그날’은 보혜사가 오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보혜사가 오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면, 제자들은 더는 물을 것이 없어집니다. 한편 예수님은(그날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예수님 이름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23절).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응답받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24절). 성도는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할 때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과 굳거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분 안에서 은혜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 무엇이든 ‘예수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주님이 내게 주신 응답의 기쁨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말씀 요약)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리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슬퍼하지만 다시 예수님을 볼 때 그들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면 받고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희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날마다 저의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며 주님께 한 걸음씩 더 나아가길 원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주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시들지 않은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