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1–10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연락처도 많고, 단체 대화방과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소식을 접합니다. 그런데 정작 마음을 맡기고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눌 사람은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자녀와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과 상실, 죄책감과 마음의 상처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교회는 짐이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도 아닙니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어깨를 내어 주며 함께 걸어가는 곳입니다.
누군가 넘어졌을 때 그의 실패를 이야기하기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누군가 아파할 때 너무 빨리 답을 주기보다 먼저 곁에 앉아 주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습니다. 바울도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5)고 말씀합니다. 각자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앞에서는 함께 들어 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짐을 진다는 것은 “내가 당신 대신 살아 주겠습니다”가 아니라, “당신이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함께 걷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한 번의 친절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갈 6:9)고 권면합니다. 사랑했는데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기도했는데도 상황이 그대로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 공동체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의 짐을 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의 짐을 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죄의 무게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넘어진 사람을 이야기하는 교회가 아니라 다시 일으키는 교회, 아픈 사람에게 답부터 주기보다 먼저 곁에 앉아 주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길을 내가 대신 걸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혼자 걷게 두지는 않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셨듯이, 우리도 서로의 짐을 지며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