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오래 전부터 그 미션을 품고 달려가노라 했었다. 그럼에도 이제 딱 정확한 응답은 확실하게 다가왔다. 미션의 땅끝은 바로, “여기가 땅 끝입니다”, 매주 교회 주보에 올라오는 기도 제목이다. 땅끝의 의미는 “여기서 전하라”, 바로 그 미션일 것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미션 퍼스팩티브스”(Mission Perspectives), 미주 전체(세계적) 선교 훈련을 교회 선교 일원으로 하고 있었다. 꼭 참석하고 싶었으나, 심한 전자파 환자(?)에겐 어불성설이었다. 막내가 내 몫까지 열심으로 해 주었다. 그 곳에서 추천한 책 한 권을 구입해 내게 전해주었다. 엄마는 읽기선수이니 금방일 거에요, 전 도저히 못하겠어요.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그것도 소설도 아니고 전기다. 흠, 그렇게 읽기로 하자. 그리고 책을 펼쳤다.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아도니람’, 그는 광활하게 넓고 넓은 미국 땅에서 최초의 해외 파송 선교사다.
그는 1788년 8월 메사추세츠 몰든에서 퍼스트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에 로드 아일랜드대학(후에 브라운대학) 입학, 우수함으로 1학년을 건너뛰고 2학년으로 시작, 학문에,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20세에 여행 중 우연하게 한 여인숙에서 대학시절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 한 후 큰 충격을 받고 하나님의 엄하심에 심취하게 된다. 20세에 앤도버 신학교 2학년으로 입학, 평범한 연구와 사색으로 신학 공부에 몰두함. 후에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만 바치기로 결단함. 21세 에 브라운대학 교수 자리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함. 22세에 보스턴에 파크 st교회의 담임목사 제의 도 거절함. 그는 인도 복음 전파의 부케넌 박사가 쓴, 동방 미전도 종족에 복음 전파에 관심을 갖게 됨. 22세, “아바 왕국으로 간 사절단의 보고서”라는 책을 읽고 버마에 관해 알게 된 후 가을 내내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콜링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선교사로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의 자연 환경 배경이다. 이동 수단은 마차와 말이었고, 타국 해외로 나갈 때는 바닷길로 항해를 해야 했다. ‘아도니람’ 선교사는 아내와 함께 인도 ‘카라반호’에 승선하며 출항함. 1812년 6월 인도 캘커타에 도착, 영국인 ‘윌리엄 캐리’를 만나 버마와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에 대한 안내를 받음. 보통 배를 타고 항해할 때는 짧아야 한 주간, 몇 달씩은 관례다.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인근에 정착,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렇게 버마의 랑군에 도착한 선교사 부부는 낯선 나라 적응으로 또 다른 어려운 시기를 지났다. 풍토병에 시달리고 각종 죽음에 이르는 전염병에 노출되었다. 의학은 전무했고 치유법은 깊은 숲 속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과의 독대 뿐이었다. 열병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보내기까지 했다. 뿐일까, 주민들은 하얀 물귀신 같은 놈들이 무슨 희귀한 신을 믿으라고 한다며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일도 허다했다. 영국과 인도의 전쟁 때는 간첩으로 몰려 참혹한 감옥 생활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사자로 세워지기로 총력을 다했고 버마어로 성경 번역에 온 힘을 다했다. 30년 이상 미국 땅을 밟지도 못하면서 오직 선교의 그 외로운 길을 걸었다. 62세, 열병으로 인해 ‘아리스티드 마리호’에 승선, 아도니람 선교사는 바다 한 가운데서 숨을 거둔다.
“여기가 땅끝”, 그 패터슨에서 선교사 역을 함께 했던 J 목사님은 선교의 부름을 받으셨고 가차없이 그 길을 역시 정주행으로 달려가셨다. 일차적으로 ‘펜실베니아’에 있는‘웩’ WEC(Wohdwide Evagelization for Chist) 선교 센터로 A 사모님과 함께 손을 꼭 잡고 입학을 하셨다. 그곳에서 주야로 4개월 동안 강력 선교 훈련을 받으셨다. J 목사님의 문자가 있었다. 자신이 영어를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 이렇게 영어를 못했던 사람이었나 자괴감이 든다고…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선교 훈련을 무사히 끝내고 드디어 ‘선교사’ 임명을 받았다. 7월16일 본 교회에서 J 목사님과 A 사모님의 ‘선교사 파송 예배’를 ‘웩’ 임원들과 함께 성대하게 마치고 두 선교사님들은 곧바로 선교지 ‘요르단’으로 떠나셨다. 10년만 젊었다면 나도 함께 했을 터인데… 가슴이 그저 먹먹할 뿐이다. 선교의 그 땅은 지금도 풍토병은 현존해 있었고, 사막의 땅에서 귀한 물로 인한 물갈이 질병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신다는 소식이다. ‘땅끝’ 요르단 사막으로 오늘도 내일도 오직 중보기도 그 길뿐이다. 오직 기도의 길로…
“땅끝까지 전하라”, 아도니람, J, A 선교사님들의 행진은 땅끝의 본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