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간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날입니다.
스페인에 ‘파코(Paco)’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깊은 갈등 끝에 집을 떠난 아들은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하루를 기다리고, 계절을 지나며 아들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신문에 짧은 광고 하나를 냅니다.
“사랑하는 파코에게. 내일 정오, 마드리드 광장에서 만나자. 나는 이미 너를 다 용서했다.”
다음 날 광장에는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파코’들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누군가의 용서와,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광고는 그들에게 이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찾으러 왔다. 나는 아직 포기되지 않았다.”
성탄은 바로 이 소식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멀리서 기다리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만나기 위해 직접 이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에는 400년의 침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고, 영적으로는 형식만 남은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람들이 가장 희망을 내려놓았던 그 순간에 하나님은 조용히 움직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부드러운 침대가 아니라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탄생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들은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늘 가장자리에 머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인생 자체가 ‘밤’과 같던 순간에 하늘의 영광이 비추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되었기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스스로 설 수 없을 때 오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셔서, 누구든 두려움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 계십니다.
남들이 잠든 밤에도 일터를 지키는 사람 곁에, 말하지 못한 눈물을 삼키는 사람 곁에, 삶의 무게를 안고 버티는 사람 곁에 함께 계십니다.
이제 기다림은 끝났습니다.
구주 예수님이 오셨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성탄의 평화가 우리의 삶과 가정 가운데 깊이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