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이다.” (창세기 50:20)
가정은 사랑의 터전이지만,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족 간의 말 한마디, 오해와 갈등, 반복되는 실망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이렇듯 상처의 중심에는 종종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용서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어렵고도 필요한 주제다. 요셉의 생애는 용서가 단순한 감정적 결단이 아님을 보여준다. 형제들의 질투로 인해 구덩이에 던져지고, 낯선 땅에서 노예로 팔려가며, 감옥에까지 갇히는 고난을 겪었던 요셉은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보복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복수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들을 향해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말하며 용서를 선언한다.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난의 시간을 하나님의 섭리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는 형들의 악행마저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선하게 쓰였음을 고백한다. 용서란, 과거의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의 손길로 바라보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믿음은 요셉을 치유하였고, 동시에 형제들과 가족 전체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용서는 개인의 미덕을 넘어, 가정과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듯, 그 사랑을 받은 자는 이제 다른 이에게 용서를 실천할 책임이 있다.
오늘날 교회 또한 하나님의 가족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오해와 갈등이 발생하고, 때로는 깊은 감정의 골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복음의 본질인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용서는 단지 의지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직후, 곧바로 용서에 대한 권세를 언급하셨다. 이는 성령의 능력이야말로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임을 의미한다. 우리의 감정과 이성만으로는 용서할 수 없을 때,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용서할 힘이 없음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용서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반드시 열매 맺을 것이다.
가정과 교회 안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다면, 오늘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결단해야 한다. 용서는 나를 자유롭게 하며, 상대를 살리는 길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이다. 요셉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믿음 위에 설 때, 우리는 진정한 화해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삶의 자리에서 먼저 용서를 실천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