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느헤미야 2:20)
비전은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주시는 방향과 목적이다. 그러나 그 비전은 단지 한 사람의 열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함께 꿈꾸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해 실현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소식을 듣고 단지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현실을 통탄하며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거룩한 불만을 창조적인 순종으로 전환시켰다. 느헤미야의 불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는 현실에 대한 애통함이었다. 그것이 비전의 출발점이 되었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는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에도 이 같은 ‘창조적 불만’이 필요하다. 현실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는 태도—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의 자세이다. 느헤미야는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함으로 시작했고, 하나님의 선한 손에 기대어 행동으로 나아갔다.
물론 비전의 길에는 방해가 따른다. 산발랏과 도비야처럼 외부의 조롱이 있고, 공동체 안에도 낙심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선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했다. 여기서 말하는 ‘형통’은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담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우리도 이 시대의 느헤미야처럼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을 향해,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감당하며 공동체를 세워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 소그룹의 회복, 예배와 기도의 불씨를 살리는 일 모두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무너진 현실 앞에서 비판만 하는 자가 아니라, 무릎 꿇고 함께 손을 잡는 자,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된다. 진정한 ‘함께’는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함께 울고, 함께 일어나, 함께 순종하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책임 속에서, 하베스트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따라 견고히 세워져 가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함께 꿈꾸고 함께 행동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