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7장부터 열왕기하 5장까지는 엘리야의 사역과 엘리사가 선지자 직분을 이어받아 활동하던 시기를 다룬다. 두 사람의 기적에서 ‘생명과 죽음’이란 주제가 부각된다. 엘리사의 경우는 열왕기하 6장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5장까지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이 살아난 일(4:8~37)과 나아만 장군의 나병 치유(5장) 등 ‘생명’이 강조된 반면, 6장 부터는 이스라엘의 앞날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엘리사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
가난한 선지 제자가 물에 빠뜨린 도끼를 엘리사가 물 위로 떠오르게 한 기적은 희망의 신호탄과 같다(6:1~7).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로 왔을 때 하나님은 불 말과 불 병거로 그를 보호하시고, 아름 군사들을 몰아내신다(6:8~23). 이후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해 백성의 굶주림이 극에 달하자, 북 이스라엘 왕 요람(여호람)은 엘리사를 탓하며 죽이려 한다(6:24~31). 이때 하나님은 엘리사가 예언한 바대로 아람 군대를 물리쳐 주시는데,나병 환자들이 이 일의 증인이 된다(7:1~20). 7년 기근에 관한 기사는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넴 여인이 땅을 되찾은 일은 하나님이 경건한 믿음의 백성을 보호하심을 보여 준다(8:1~6, 참조, 4:8~10). 엘리사의 예언대로 하사엘이 쿠데타를 일으켜 벤하닷을 죽이고 아람의 왕위에 오른다(8:7~15). 한편 유다에서는 아하시야가 여호람에 이어 즉위한다(8:16~29). 북 이스라엘의 왕 요람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자,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예후가 아합의 집을 치고 왕이 될 것을 예언하게 하시고, 엘리사의 제자를 시켜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다(9:1~13). 이 사건을 기점으로 엘리사는 역사의 무대에서 점차 물러난다.
혁명을 일으킨 예후
예후는 북 이스라엘 왕 요람을 죽여 나봇의 밭에 버린다(9:21~26). 그는 유다 왕 아하시야도 죽이고(9:27),이스르엘로 진군해 아합의 아내 이세벨까지 처단한다(9:30~35). 열왕기는 이 일이 엘리야가 선포한 예언의 성취임을 분명히 한다(9:36~37, 왕상 21:23).예후는 사마리아의 귀족들(장로들과 교육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곳에 있는 아합의 아들 70명을 붙잡아 죽이게 한다(10:1~11). 이어서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만난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 42명도 없앤다.당시 그들은 아합 집안을 방문하러 가던 차였다(10:12~14). 예후는 여호나답과 손잡고 아합 가문의 남은 이들과, 바알을 섬기는 자들은 물론 바알 숭배의 잔재까지 제거한다. 하지만 그 역시 하나님 말씀(율법)을 전심으로 준행하지 않았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10:15~36).
예후의 혁명 이후 유다와 북 이스라엘
예후의 혁명이 막을 내린 이후에도 혼란을 틈타 정권을 찬탈하려는 피비린내 나는 음모와 처단이 계속된다. 유다 왕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아들이 시해되자 왕족을 멸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 이때 아하시야의 아들로서 다윗 가문에 속한 어린 요아스가 고모와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성전에 몸을 숨겨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그리고 여호야다의 지시로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이 성전 밖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에서 아달랴를 죽인다(11:1~16). 7세에 왕위에 오른 요아스는(11:12,21)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으로 평가받지만,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았다(12:1~3). 또 성전 보수에 심혈을 기울였지만(12:4~16), 아람 왕 하사엘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성전 보물을 약탈하고(12:17~18), 결국 자기 신복의 칼에 최후를 맞이한다(12:20~21). 유다 왕 요아스 재위 23년에, 북 이스라엘에서는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다. 아람 왕 하사엘과 그 뒤를 이은 아들 벤하닷에게 거듭 학대당한 북 이스라엘은 겨우 마병 50명과 병거 10대, 보병 1만 명만 남을 만큼 쇠락한다. 백성의 고난을 보시고, 여호아하스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 이스라엘을 건지셔서 이전처럼 그들의 장막에 거하게 하신다. 그럼에도 여호아하스와 그 백성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는다(13:1~9). 하나님 은혜를 잊고 다시 죄를 반복하는 백성의 모습은 사사 시대를 연상시킨다.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요아스도 아버지의 죄를 답습한다.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와 싸워 승리한 일이 간략히 언급된다(13:10~13). 이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당대에 큰 영향을 끼친 엘리사는 자신을 찾아온 요아스에게 그가 아람을 세 번 쳐서 이길 것이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둔다.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는 여호아하스 시절 아람 왕에게 빼앗겼던 성읍을 되찾는다.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택하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13:23~25). 한편 예후의 혁명 이후, 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에 대한 기술이 이어진다(14:1~22). 아마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는다(14:3~4). 아마샤는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이들을 처단하고, 에돔을 정벌해 빼앗긴 땅을 되찾는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가 패하고 왕궁과 성전 기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자초한다. 아마샤가 하나님을 버리자 무리가 반역을 일으켰고, 그는 결국 반역자들의 손에 죽는다(14:17~22, 대하 25:27~28). 북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 이어 그의 아들 여로보암 2세가 왕위에 오른다(14:23~29). 그는 41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통치하며 큰 군사적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의 본래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는 일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또한 이전 왕들(특히 여로보암 1세)처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패역의 길을 걷는다.
북 이스라엘의 몰락과 멸망
열왕기하 15~17장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 시기에 통치한 왕들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한편, 그 사이사이에 동시대 유다 왕들에 관한 기사도 함께 소개한다. 제일 먼저 유다 왕 아사랴에 관한 내용이 첫머리를 장식한다(15:1~7). ‘웃시야’라고도 불린 그는 아버지 아마샤와 유사하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면이 있었으나, 죄악의 길을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병으로 그를 치신 까닭에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어 통치를 계승한다(15:5). 유다의 이러한 상황과 때를 같이하여,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시대가 시작된다. 예후의 후손 4대까지 북 이스라엘의 권좌와 존속에 관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시기가 다 끝났기 때문이다(10:3), 15:12). 여로보암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스가랴는 여섯 달 만에 살룸에게 죽임당하고(15:8~12), 살룸은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시해당한다(15:13~16). 므나헴은 10년간 통치를 이어 가지만 앗수르의 침입으로 많은 양의 은을 빼앗긴다(15:17~22). 그를 계승해 브가히야가 왕위에 오르지만, 통치 2년 만에 베가의 반역으로 살해된다(15:23~26). 베가는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되는 호세아에게 암살당한다(15:27~31). 한편 요담에 이어 유다를 다스린 아하스에 관한 기사(16장)는 선대왕들과 달리 부정적인 평가와 함께 시작한다. 당시 아람 및 북 이스라엘 연합군과의 전쟁을 위해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봉신을 자처하고 원군을 요청한다. 앗수르 왕을 만나러 간 다메섹에서 이방 신의 제단을 본 아하스는 그 제단을 본떠 임의로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을 만들게 하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게 한다. 앗수르 왕을 두려워할지언정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아하스의 뒤를 이어, 선한 왕으로 평가받는 히스기야가 드디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16:20).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호세아다(17장). 그는 비록 악을 행하긴 하지만, 이전 왕들처럼 패역의 길을 걷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앗수르의 속국으로 전락한 북 이스라엘의 최후가 순식간에 찾아온다. 호세아는 애굽을 의지해 앗수르에 반기를 들며 국운을 되살리려 하지만,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군대에 3년간 포위당한 끝에 패망하고 만다(17:1~6)